자유게시판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 김구

PDC 2013. 11. 6. 23:46

친애하는 삼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를 싸고 움직이는 국내외 정세는 위기에 임하였다. 2차 대전에 있어서 동맹국은 민주와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천만의 생령을 희생하여서 최후의 승리를 전취하였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 세계는 다시 두 개로 갈리어졌다. 이로 인하여 제3차 전쟁은 되고 있다. 보라!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을 다시 만난 아내는,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들을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 남편과 그 아들을 또 다시 전장으로 보내지 아니하면 아니 될 운명이 찾아오고 있지 아니한가?


인류의 양심을 가진 자라면 누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바랄 것이냐? 과거에 있어서 전쟁을 애호하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군밖에 없었다. 지금에 있어서도 전쟁이 폭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는 파시스트 강도 일본뿐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들이 전쟁만 나면 저희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남북에서 외력(外力)에 아부하는 자만은 혹왈 남침 혹왈 북벌하면서 막연하게 전쟁을 숙망(宿望)하고 있지마는 실지에 있어서는 아직 그 실현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발발된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동시에 동족의 피를 흘려서 적을 살릴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 될 것이다. 이로서 그들은 새 상전의 투지를 북돋을 것이요 옛 상전의 귀여움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 난다 할지라도 저희들의 자질(子姪)만은 징병도 징용도 면제될 것으로 믿을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왜정 하에서도 그들에게는 그러한 은전(恩典)이 있었던 까닭이다.


한국은 일본과 수십 년 동안 계속하여 혈투하였다. 그러므로 일본과 전쟁하는 동맹국이 승리할 때에 우리도 자유롭고 행복스럽게 날을 보낼 줄 알았다. 그러나 왜인은 도리어 환소(歡笑) 중에 경쾌히 날을 보내고 있으되 우리 한인은 공포 중에서 죄인과 같이 날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말이라면 우리를 배은망덕하는 자라고 질책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신문 기자 리처드의 입에서 나온 데야 어찌 공정한 말이라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우리 국토를 양분하였으며 앞으로는 그것을 영원히 양국 영토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의 해방이란 사전상에 새 해석을 올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유엔은 이러한 불합리한 것을 시정하여서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며 전쟁의 위기를 방지하여서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엔은 한국에 대하여도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임시위원단을 파견하였다. 그 위원단은 신탁 없는 내정 간섭 없는 조건하에 그들의 공평한 감시로서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하여 남북 통일의 완전 자주 독립의 정부를 수립할 것과 미소 양군을 철퇴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이제 불행히 소련의 보이콧으로써 그 위원단의 사무 진행에 방해가 불무하다. 그 위원단은 유엔의 위신을 가강(加强)하여서 세계 평화 수립을 순리(順利)하게 진전시키기 위하여 또는 그 위원 제공들의 혁혁한 업적을 한국 독립 운동 사상에 남김으로써 한인은 물론 일체 약소 민족 간에 있어서 영원한 은의(恩誼)를 맺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만일 자기네의 노력이 그 목적을 관철하기에 부족할 때에는 유엔 전체의 역량을 발동하여서라도 기어이 성공할 것을 삼척동자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군 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 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몰각한 도배들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박테리아가 태양을 싫어함이나 다름이 없이 통일 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유언비어를 조출(造出)하여서 단선 군정의 노선으로 민중을 선동하여 유엔 위원단을 미혹케 하기에 전심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미군정의 난경(難境) 하에서 육성된 그들은 경찰을 종용하여서 선거를 독점하도록 배치하고 인민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태연스럽게도 현실을 투철히 인식하고 장래를 명찰하는 선각자로서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각자는 매국매족의 일진회 식 선각자일 것이다. 왜적이 한국을 병합하던 당시의 국제정세는 합병을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애국지사들이 생명을 도()하여 반항하였지만 합병은 필경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현실을 파악한 일진회는 동경까지 가서 합병을 청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자들은 영원히 매국적이 되고 선각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설령 유엔 위원단이 금일의 군정을 꿈꾸는 그들의 원대로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한다면 이로서 한국의 원정(寃情)은 다시 호소할 곳이 없을 것이다. 유엔 위원단 제공은 한인과 영원히 불해(不解)의 원()을 맺을 것이요, 한국 분할을 영원히 공고히 만든 새 일진회는 자손만대의 죄인이 될 것이다.


통일하면 살고 분열하면 죽는 것은 고금의 철칙이나 자기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 민족을 사갱(死坑)에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한 일이다. 이와 같은 위기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최고 유일의 이념을 재검토하여 국내외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유엔 위원단에 제출한 의견서는 이 필요에서 작성된 것이다.


우리는 첫째로 자주 독립의 통일 정부를 수립할 것이며 이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먼저 남북 정치범을 동시 석방하여 미소 양군을 철퇴시키며 남북 지도자 회의를 소집할 것이니 이와 같은 원칙은 우리 목적을 관철할 때까지 변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불변의 원칙으로서 순식만변(瞬息萬變)하는 국내외 정세를 순응 혹은 극복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중국 장 주석의 이른 바 '불변으로 응 만변'이라는 것이다.


독립이 원칙인 이상 독립이 희망 없다고 자치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왜정 하에서 충분히 인식한 바와 같이 우리는 통일 정부가 가망 없다고 단독 정부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단독 정부를 중앙 정부라고 명명하여 자기 위안을 받으려하는 것은 군정청을 남조선 과도 정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사은망념(邪恩忘念)은 해인해기(害人害己)할 뿐이니 통일 정부 독립만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삼천만 자매 형제여!


우리가 자주 독립의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면 먼저 국제의 동정을 쟁취하여야 할 것이오 이것을 쟁취하려면 전 민족의 공고한 단결로써 그들에게 정당한 인식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미군정의 앞잡이로 인정을 받은 한민당의 영도 하에 있는 소위 임협은 나의 의견에 대하여 대구소괴(大口小怪)한 듯이 비애국적 비신사적 태도로서 원칙도 없고 조리도 없이 후욕(詬辱)만 가하였다.


한민당의 후설이 되어 있는 xxxxxxx란 여자의 이름까지 빌어가지고 나를 모욕하였다. 일찍이 조소앙 엄항섭 양씨가 수도청에 구인되었다고 허언을 조출하던 그 신문은 이번에 또 '애국 단체가 제출한 건의를 김구 씨 동의 표명'이라는 제목으로써 허언을 조출하였다. 이와 같은 비열한 행위는 도리어 애국 동포들의 분노를 야기하여 각 방면에서 시비의 성한(聲恨)이 높았다. 이리하여 내가 바라던 단결은 실현도 되기 전에 혼란만 더 커졌을 뿐이다. 시비가 없는 사회에는 개량이 없고 진보가 없는 법이니 여론이 환기됨을 방지할 바이 아니나 천재일우의 호기를 만나서 원방에서 내감(來監)한 귀빈을 맞아가지고 우리 국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이 순간에 있어서 이것이 우리의 취할 바 행동은 아니다.


일절 내부 투쟁은 정지하자! 소불인(小不忍)이면 난대모(難大謀)라 하였으니 우리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용감하게 참아보자.


삼천만 자매 형제여!


한국이 있어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 독립적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 하는 이때에 있어서 어찌 개인이나 자기의 집단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자가 있으랴? 우리는 과거를 한 번 잊어버려 보자. 갑은 을을 을은 갑을 의심하지 말며 타매(唾罵)하지 말고 피차에 진지한 애국심에 호소해 보자! 암살과 파괴와 파공(罷工)은 외군의 철퇴를 지연시키며 조국의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조출할 것뿐이다. 계속한 투쟁을 중지하고 관대한 온정으로 임해 보자!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내가 불초하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희생하였다. 나의 연령이 이제 703인 바 나에게 남은 것은 금일 금일 하는 여생이 있을 뿐이다. 이제 새삼스럽게 재물을 탐내며 영예를 탐낼 것이냐? 더구나 외군 군정 하에 있는 정권을 탐낼 것이냐?


내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주지하는 것도 일체가 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위하여는 일신이나 일당의 이익에 구애되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전 민족의 단결을 위하여서는 삼천만 동포와 공동 분투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는 누가 나를 모욕하였다 하여 염두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마하트마 간디에게서도 배운 바가 있다. 그는 자기를 저격한 흉한을 용서할 것을 운명하는 그 순간에 있어서도 잊지 아니하고 손을 자기 이마에 대었다 한다. 내가 사형 언도를 당해본 일도 있고 저격을 당해본 일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는 나의 원수를 용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지금도 부끄러워한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단일한 염원은 삼천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의 달성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 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38선을 싸고도는 원한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런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삼천만동포 자매 형제여! 붓이 이에 이르매 가슴이 억색하고 눈물이 앞을 가리어 말을 더 이루지 못하겠다. 바라건대 나의 애달픈 고충을 명찰하고 명일의 건전한 조국을 위하여 한 번 더 심사(深思)하라. (<서울신문> 1948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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